성악 유학 나라 정하기: 러시아·프랑스·이탈리아 거쳐 결국 독일로 간 이유

성악 유학을 준비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은 마주치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로 가야 할까?” 저도 이 질문 앞에서 꽤 오래 헤맸어요. 지금은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사실 독일은 제 첫 번째 선택지가 아니었습니다. 러시아, 프랑스, 이탈리아를 거쳐 마지막에 도착한 곳이 독일이었어요. 이 과정을 돌아보면, 결국 모든 선택의 갈림길에는 하나의 공통된 변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언어였습니다.

왜 처음부터 독일이 아니었나

저는 콩쿠르를 휩쓸고 다니거나 학교에서 늘 1등을 하던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유학지를 정할 때도 남들 다 가는 길보다는 조금 다른 길을 찾고 싶었어요. 독일로 유학 가는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저한테는 그게 레드오션처럼 느껴졌습니다. “다들 가는 곳 말고, 나한테 기회가 있는 곳은 어디일까”라는 생각이 컸어요.

첫 번째 후보: 러시아

그 무렵 저는 러시아 출신 바리톤 드미트리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그의 노래를 듣다가 자연스럽게 러시아 가곡을 찾아 듣게 됐고, 취향에 정말 잘 맞더라고요. 그래서 다짜고짜 학교의 러시아 딕션 교수님을 찾아가 러시아 유학에 대해 조언을 구했습니다.

교수님은 본인이 음악 전공이 아니라 언어학 전공이라며, 한국에서 고등학교 때 러시아로 이민 가서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에 입학한 제자의 연락처를 알려주셨어요. 그분과 카톡을 주고받으며 들은 이야기가 제 마음을 접게 만들었습니다. 러시아어는 정말 어렵고, 음대에 입학하면 3년의 어학 준비 기간을 주는데, 그마저도 많은 학생들이 언어의 벽을 넘지 못해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간다는 것이었어요.

그때까지 저는 “언어는 현장에서 부딪히면서 배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고, 자격을 갖춰야만 들어갈 수 있는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독일도 마찬가지였어요. 먼저 유학 간 선배들이 “독일은 언어 따는 데만 2년은 잡아야 한다”고 했을 때, 저한테는 그게 “음악을 멈추고 언어만 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그 시점엔 독일도 제 선택지에서 지웠습니다.

두 번째 후보: 프랑스

대학교 3학년, 불어 딕션 수업을 들으면서 프랑스 음악에 마음이 갔습니다. 제 유학 준비 철학은 이랬어요. 3학년 때 나라를 정하고, 4학년 때 어학원을 다니며 준비한다. 그래서 프랑스로 방향을 정하고, 불어 딕션 교수님께 열심히 조언을 구했고, 4학년 땐 일주일에 두 번씩 저녁 시간에 불어 학원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졸업할 무렵, 실제로 파리 유학을 준비하려던 참에 마크롱 정부가 비유럽권 학생들에게 학비를 16배 인상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유학을 준비하던 상황에서 이 소식은 너무 큰 변수였어요. 결국 프랑스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 번째 후보: 이탈리아

프랑스가 어려워지자 자연스럽게 눈을 돌린 곳이 이탈리아였습니다. 성악의 본고장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학교 입학에 언어 커트라인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래, 이탈리아로 틀자” 하고 한국에서 이탈리아어 인텐시브 코스를 바로 시작했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배웠던 기억이 나요.

예상치 못한 방향 전환: 독일

이탈리아어를 공부한 지 3개월쯤 됐을 때, 학교 후배의 권유로 한국에서 열린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음악대학 교수님의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일주일 동안 매일 레슨을 받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교수님이 저를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너 뽑아주면 갈 거냐”고 물으셨을 때, 제 속마음은 이랬습니다. “언어 없이도 뽑아준다면 독일이 낫지!”

그 자리에서 이탈리아 유학을 준비 중이던 상황을 솔직히 말씀드리고, “교수님이 불러주시면 독일로 방향을 틀겠다”고 답했습니다. 그게 2019년 2월이었어요.

독일어 3개월 벼락치기, 그리고 첫 낙방

이후 3개월 동안 독일어 과외를 받으며 준비했습니다. 문제는 그 무렵 재미있게 배우던 이탈리아어를 놓치기 싫어서, 두 언어를 같이 붙잡고 있었다는 거예요. 두 언어가 워낙 다르다 보니 독일어 습득 속도는 오히려 더뎌졌습니다. 결국 5월에 독일에 입국했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독일어 말은 거의 없었어요.

교수님을 찾아가니 반갑게 맞아주셨고, 제가 초청장(아인라둥)조차 못 받았다고 하니 그 자리에서 바로 프린트해주셨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 학교는 독일어 B1 자격증이 있어야 정식으로 초청장을 발급해준다고 하더라고요.) 이틀에 한 번씩 레슨을 받으며 입시일까지 준비했지만, 결과는 낙방이었습니다.

시험이 끝난 후 교수님과는 연락이 끊겼고, 솔직히 그때는 서운한 마음이 컸습니다.

시간이 지나 알게 된 진짜 이유

시간이 흘러 코로나 시기를 지나고, 저는 다시 입시를 봤고 이번엔 합격해서 그 교수님의 제자가 됐습니다. 졸업할 무렵, 예전부터 궁금했던 걸 여쭤봤어요. “그때 저 왜 안 뽑으셨어요?”

교수님의 답은 단순했습니다. 순전히 독일어 때문이었다는 것. 그때 뽑혔다면 적응하기 너무 어려웠을 거고, 그게 오히려 저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이야기였어요.

성악 유학을 준비하는 분들께

이 경험을 돌아보며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 나라를 정할 때 언어 요건을 가장 먼저 확인하세요. 러시아는 3년의 어학 기간에도 중도 포기자가 많고, 독일은 특정 어학 자격증(B1 등)이 입학 초청장 발급의 전제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탈리아처럼 언어 커트라인이 없는 곳도 있으니, 본인 상황에 맞게 비교해보는 게 중요해요.
  • 계획은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저는 러시아에서 프랑스로,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이탈리아에서 독일로 계속 방향을 바꿨어요. 정책 변화, 우연한 마스터클래스 같은 외부 변수가 진로를 완전히 바꿔놓기도 합니다.
  • 당장의 실패가 끝이 아닐 수 있습니다. 첫 독일 오디션에서 떨어졌을 때는 서운했지만, 결국 같은 교수님 밑에서 다시 배우게 됐습니다. 지나고 보면 그 결정에도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더라고요.

이 글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성악 유학 준비, 나라 선택, 어학 준비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편하게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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